낮에나온 반달

밤에 나타난 옆집 친구 4

초원의 호수 2024. 2. 15. 11:46

다음 해 8월이 되자 동창회가 있어 시간을 내어 동창회에 참석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숙이가 동창회에 참석을 했다. 숙이도 같은 동창 이기 때문에 동창회에
참석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동안 동창회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
그러나 숙이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창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숙이에게 물어보았다.
숙이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날밤 부축해 줬잖아"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숙이 어머니는 왜 안 왔다고 했을까.

하지만 숙이는 내가 묻는 의도를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다음 말을 묻기도 전에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걱정하더라고"
하면서 그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숙이는 양주로 시집가 남편과 정미소를 운영한다. 여름에는 그런대로 한가하게
보냈는데 가을이 되자 눈코 뜰 새 없이 일이 밀려왔다. 아직 햅쌀은 안 나왔지만
농민들은 햅쌀이 나오기 전에 묵은쌀을 처분하기 위해 한꺼번에 정미소로 밀려들었다.

갑자기 일거리가 밀려들자 숙이부부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생신이 다가 오자 숙이는 친정에 전화를 하여, "일이 너무 많아
 밤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런데 신랑은 자기에게 시집을 온후 고생만 하는 숙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주는 숙이가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숙이에게 "오늘밤은 나 혼자 해도 충분하니까 친정에" 다녀오라고 한다
숙이가 거절을 했지만 신랑은 한사코 다녀오라고 하여 그날밤 택시를 타고 친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나를 만났고 화상을 입은 나를 부축하여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후 바로 친정집으로 갔는데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친정 집에서도 숙이가 오는 줄 알았다면 밤을 꼬박 세더라도 기다렸을 텐데
못 온다는 전화를 받았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것이다..

농촌에서도 요즘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기 때문에 모두 피곤하여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쓰러져 잠들어 버린다. 그러한 사정을 잘 아는 숙이는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잠에서 깰까 봐
고양이 처럼 살금살금 동생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동생들 틈에 끼어 바로 잠들어 버린다.

숙이가 왔다는 걸 까맣게 모르는 숙이 어머니는 동이 트자 제일 먼저 일어나 
고추를 말리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다가 나를 만난 것이고 나에게는 숙이가 안 왔다고 한다..
숙이가 온걸 모르니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날아 왔을린 없고...

숙이 엄마가 숙이가 왔다는 걸 안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고추도 널고 아침밥도 짓는 등 이것저것 하다가 문득 낯선 신발을 발견하였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숙이가 동생들 틈에 끼어 쿨쿨 자고 있질 않는가.

그 후 숙이 어머니는 숙이가 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큰형 집으로 즉시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떠난 뒤였다.....

숙이 어머니는,  "숙이는 안 왔다고" 해서 일찍 가 버렸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