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나온 반달

밤에 나타난 옆집 친구 1

초원의 호수 2024. 2. 13. 23:10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오전 근무만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골 큰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을걷이가 바쁘니 시골에 와서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시골로 향했다.

시골은 그리 멀지 않아 내가 도착했을 땐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시골에선 벼베기를 하고 있어서 나는 벼베기를 도와주고 다음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논으로 나가려는데 동내 앞 신작로에서
건너 동내에 사는 고향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부인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다른 친구 하나가 식당을 개업했는데 거기에 간다고 한다.
나도 개업한 그 친구와는 친한 사이이다.
아니 그 친구는 지금 만난 친구 보다 더 가깝게 지내온 사이이다

그래서 나는 논에 나가는 걸 포기하고 그 친구 부부와 함께 개업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개업을 한다는 그 친구의 식당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아직 대낮인데도 개업 집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고 거의 아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나와 비슷하게 왔던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비운 지 오래인듯하다 , 나와 같이 왔던 그 친구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내가 너무 오래 있었던 건데 나 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골 사람들이야 가까이 살기 때문에 서로 자주 보기도 하고 필요하면 만나기도 해
얼굴만 비추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5년 전에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갔기 때문에 모두 5년 만에 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새로 방문하는 친구나 선 후배들을 계속 상대하느라 발목이
잡혀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10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식당에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 이제 몇 테이블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이젠 일어 서야 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 서렸는데 개업 친구가 나를 붙잡았다. 영철이가 지금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영철이를 보고 가라는 것이다. 영철이는 나하고 그렇게 친하진 않았지만 몇 년 전에
농기계 사고로 손 하나를 잃었다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반가운 친구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손을 하나 잃었다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개업 친구가 누군가에게 커피를 가져오라 한다. 그러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커피와 커피잔을 내 앞에 올려놓은 후 또다시 주방 쪽으로 가더니
커다란 주전자를 가져왔다. 개업친구의 제수씨 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앗 뜨거워!!" 하는 소리를 지르며 벌 떡 일어났다.
제수씨란 여자가 내 발등에다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부운 것이다.
제수씨는 주전자가 무거워 커피잔에 가기도 전에 주전자가 기울어져 내 발에
부운 것 같은데 나도 옆에 친구와 대화하느라 보질 못했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양말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뛰어 나갔는데
그때 마침 영철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발의 고통을 참으며
영철이와 다시 들어왔다. 영철이 손에 비하면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영철이와 2,30분가량 이야기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있는데 개업친구 제수씨가 미안한 얼굴을 하며 이거라도 바르라며 파스를 건네준다.
화상에 파스를 붙이는 사람도 있었던가. 아마 시골이라 화상약이나 상비약은 없고
노인들 허리에 붙이는 파스가 있어 그걸 들고 나온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며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발이 화끈거리며 통증이 얼마나 심했던지 거기서 머뭇할 시간 없이
바로 밖으로 나왔다.(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