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나온 반달

밤에 나타난 옆집 친구 3

초원의 호수 2024. 2. 15. 11:44

그날밤 나는 발의 고통과 된장 냄새로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된장을 바르면 상처가 빨리 낫는지는 잘 모르겠고,
처음에는 된장이 차가워 약간 시원한듯했지만 조금 지나자 더욱 화끈거리며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고통 때문에 밤새도록 뒤척이다 새벽녘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것도 잠깐이다.
물집이 터져 발이 너무 쓰라렸기 때문에 악몽만 꾸다 다시 깨어난 것이다

동이 트자 나는 너무 갑갑하여 밖으로 나왔다.
물집 이 터졌을 때는 쓰라림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고통도 줄어들었고 발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밖으로 나오자 옆집 숙이네 집에서는 숙이 어머니가 일찍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나는 숙이 어머니께 인사도 드릴 겸 발을 절룩거리며
옆집으로 향했다. 나를 본 숙이 어머니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숙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후 숙이는 아직 안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숙이 어머니는 반색을 한다. 숙이는 요즘 정미소 일이 너무 바빠
오늘은 못 오고 보름 후에나 오겠다고 어제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숙이가 안 왔다면 어젯밤 나를 부축해 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분명히 숙이였고 자신도 숙이라고 밝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동내에서 내게 어깨를 내줄 수 있는 여자가 숙이 밖에 더 있었던가

 

나는 갑자기 꿈을 꾸는 듯하였다.
내가 개업집에 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 것도 그렇고,
화상을 입은 발로 그 먼 곳에서 걸어온 것과 한밤중에 숙이를 만난 것도
꿈속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다.

하지만 꿈이 아니질 않는가. 꿈 이라기엔 너무 또렷하고
오른발도 진짜로 화상을 입었는데 꿈 일수는 없다.
다만 나를 부축해 준 여자가 숙이인가 아닌가에 대해선 나도 혼란스럽다.


내가 숙이를 마지막으로 본건 군대 가기 전인 8년 전이다.
그리고 8년 후 한 밤중에 만났다면 잘못 볼 수도 있다.
그날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흐릿한 가로등 불빛으론 얼굴을 구분할 순 없다,
다만 낯익은 목소리와 나에게 대하는 태도로만 숙이로 단정 지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착각 일수는 있다.

하지만 8년의 세월이 흔적은 있다 하더라도 목소리나 행동은
8년 세월이 바꿔 놓지 못한다. 그리고 숙이 여야만 앞 뒤가 맞는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부 몇 마디만 물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형수에게 오늘 옆집에 무슨 날 이냐고 물어보았다.
숙이가 어젯밤 택시를 타고 들어 왔는지, 아니면 낮에 전화만 하여
못 온다고 했는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이 됐던 틀림없는 건 숙이가 오늘 이곳에 와야 한다는 이유이다
숙이 어머니의 표정을 봐서는 그저 평범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하다.

형수는 아무 날도 아니라고 한다. 벼 베는 날도 아니고.

노총각이 된 동생이 장가가는 것도 아니란다. 
그런데 그때 마루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한마디 한다.
오늘이 숙이의 아버지 생신이라고 한다, 
나는 그제야 숙이가 친정에 와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시절, 특히 시골 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의 생신 만큼은 꼭 챙겨 드렸다.

아침을 먹자마자 나는 차에 시동부터 걸었다. 발에 화상을 입어
농사일에 도움도 주지 못할뿐더러 고통이 너무심해 치료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상을 입은 발이 다행히 오른발 이어서 운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만약에 왼쪽발에 화상을 입었다면 운전은 불가능하다.
 내 차는 오래된 차 이기 때문에 클러치가 무거워 왼발로 힘껏 밟아야 기아를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른발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데 살짝만 밟아도 되기 때문에 발에 무리가 안간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집으로 돌아와 그 일을 바로 잊었다. 
아니 잊었다기 보단 잠깐동안 생각은 해 보았다..

나를 부측해 준 여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
그러나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생각을 않기로 한 것이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