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나온 반달

사형제를 폐지해달라는 사형수가 있다.2

초원의 호수 2024. 2. 13. 10:20

목격자 A씨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 현장 일대에는 검문소가 설치됐다. 
그러나 정형구와 한준희는 유유히 검문소를 벗어났다. 
정형구는 아무렇지 않게 범행에 쓰인 엽총을 경찰서에 다시 맡겨두고, 
동해 일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초동 수사가 혼선을 빚으면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 사이 정형구는 수원에서 생필품을 도매하는 ‘선우종합무역’을 세웠다. 
직원도 7~8명 고용해 번지르르하게 사장 노릇을 했다.

사건 6개월 만인 1999년 7월 경기지방경찰청에 첩보 하나가 들어왔다. 
‘삼척 신혼부부 살인사건 범인이 수원과 안산지역에 숨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첩보는, 한준희가 지인과 술을 먹다 흘린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7월 6일 오전 1시30분쯤 수원시 인계동의 호텔 앞에서
 한준희를 붙잡았고, 5시간 뒤인 오전 6시쯤 호텔 안에서 자고 있던 정형구를 체포했다.

정형구와 한준희는 범행을 일체 자백했다. 
정형구는 수사기관에 이렇게 진술했다. 
“김씨 승용차가 길도 안 좋은 곳에서 추월해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 정형구는 자신이 사업이 잘나갔을 땐 외제차를 몬 적도 있었고, 
사업 도산으로 수원, 대전, 강원도를 전전하는 생활을 하느라 범행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다고 했다. 심신미약이라는 주장이다.

그해 겨울 춘천지법 강릉지원 재판부는 살인, 살인미수, 
절도 혐의를 받는 정형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한준희에게는 살인 방조, 살인미수 방조 혐의로 징역 5년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이 판시했다. 
“단지 대형승용차에 추월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피해자들을 총으로 쏘아 살해하는 등 범행의 동기에 있어서
 전혀 참작할 만한 점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보여준 생명, 신체에 대한 경시 성향 등을 참작하면 
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위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사형이 선고가 내려지자, 정형구는 “내겐 자식들이 있다.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며 재판장에 애원했다고 한다. 
2002년 7월 28일 대법원은 정형구와 한준희에 대해 형을 확정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2년 전주지법 제2민사부는 김씨 부부 자녀 2명이 
정형구와 한준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씩 총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정형구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정형구는 23년째 미집행 사형수로 있다. 
보통 사형수들은 종교활동을 하며 일과를 보낸다.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정형구도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속죄해 왔다고 한다. 
그는 올해 9월 유영철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정형구는 지난해 한 언론을 통해 사형제 위헌소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예수를 알게 되고
 내게도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이제는 서른이 훌쩍 넘었을 김씨 부부의 남겨진 두 딸에게는 “말할 수 없이 죄송하다”고 했다.

헌재가 심판대에 오른 사형제 위헌 결정을 내려도, 
정형구는 재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다. 
정형구도 이를 알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옥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 정형구가 언론에 전한 말이다.

 글쎄 ....

남겨진 유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출처 .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