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선 탈출 못 한다는 ‘감옥 섬’, 앨커트래즈를 탈옥하다
비옷 이어 붙여 고무 보트 만들고
진공청소기 모터 쓴 드릴로 감방 벽 뚫어
시신 발견 안되고 목격담 계속 나와
잔혹하고 끔찍한 살해를 저지른 후 감쪽같이 사라진 범인들.
수십 년 전 일어났지만 아직까지도 진범을 잡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사건 발생 당시보다 수사력이 발생한 오늘날에도 범인의 생존여부조차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사건들의 면면을 재조명해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는 ‘절대 탈출할 수 없는 교도소’라는 별칭을 가진 교도소가 존재했다.
샌프란시스코 내륙과는 2㎞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차갑고 거친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에 만들어진
이 교도소는 튼튼한 철창과 24시간 지켜보고 있는 감시탑, 하루 12번씩 수감자를 확인하는 빡빡한
검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명 ‘더록(이후 동명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이라 불린 앨커트래즈 교도소였다.
앨커트래즈는 난다 긴다하는 탈옥범들까지 모두 모아서 수감할만큼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교도소였다.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 ‘머신건’ 조지 켈리 같은 위험한 인물들도 이곳에 수감됐다.
수많은 탈옥 경험자들이 이곳에서 또 다시 탈옥을 시도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이 과정에서 죽거나 붙잡혔다.
1934~1963년 이 감옥이 운영되는 와중 36명 14차례에 걸친 탈옥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단 한번의 예외는 있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세계 탈옥사 최대의 미스터리 ‘앨커트래즈 탈출’ 이야기다.
이야기는 세 명의 탈옥 경험자들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훗날 탈옥 계획의 ‘머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프랭크 모리스(탈옥 당시 36세)가 1960년 1월 가장 먼저 앨커트래즈에 수감됐다.
은행 강도와 절도 등 범죄로 앨커트래즈까지 오게 된 모리스는 교도소 기록에 ‘탈옥예술가’라는
기록이 남아있을만큼 탈옥에 진심인 남자였다. 앨커트래즈에 잡혀오기 직전에도 루이지애나
주립 교도소에서 탈옥한 후 은행을 털다가 체포된 것이었다. 그는 지능지수(IQ)가 138로 탈옥 관련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1960년 말 존 앵글린(32)이라는 이름의 죄수가 앨커트래즈로 왔다.
이듬해 초에는 그의 동생인 클라렌스 앵글린(31)까지 같은 곳에 수감됐다.
은행강도였던 형제는 탈옥 경험으로 인해 앨커트래즈라는 최종 단계까지 도달하게 됐다.
이들 세명은 이미 다른 교도소에서 같이 수감된 이력이 있었다. 다시 만난 세 사람의 탈옥 경험자.
18개월간의 치밀한 탈옥 계획은 이때부터 세워졌다.
연방수사국(FBI)이 이들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탈옥범들의 이전 기록과 이전에 시도했던 탈옥 사례들을 모두 뒤졌다.
탈옥범들의 친척을 탐문 수사하고 신원 기록을 수집했다.
혹여 이들의 시신 등이 샌프란시스코 바닷가까지 떠밀려온 것이 없는지도 찾기 시작했다.
이틀 후 탈옥범들 소유로 보이는 편지가 고무로 봉인된 채 발견됐고,
물속에서 나무 노와 고무 튜브 조각이 발견됐다.
직접 만든듯한 구명조끼도 찾아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탈옥범들이 감방 벽의 환풍구를 뚫은 흔적./미 연방수사국(FBI)
탈옥범들이 감방 벽의 환풍구를 뚫은 흔적./미 연방수사국(FBI)
이들의 행방을 알수 없어진 상황에서 탈옥 계획을 상세히 전달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동료 수감자 앨런 웨스트였다. 당초 셋과 함께 탈옥 계획을 짰지만 제때 감방에서 나오지 못한 수감자였다.
그가 탈옥자들의 계획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들의 계획이 본격화된 것은 탈옥으로부터 6개월 전인 1961년 12월이었다.
탈옥범 중 한명이 우연히 낡은 톱날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은 고장난 진공청소기 모터로 만든
수제 드릴을 활용해 감방 뒤쪽의 통풍구를 뚫기 시작했다. 머리 부분이 제거된 숟가락도 도구로 쓰였다.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뚫리기 전까지 이곳은 여행가방이나 잡지로 숨겼다.
마침내 방에서 탈출한 이들은 교도관이 다니지 않는 복도 끝에 있는 교도소 옥상에 비밀 작업장을 만들었다.
한명은 잠망경을 통해 망을 보고 교대로 작업장에 들어가 탈출에 필요한 재료들을 이곳에서 제작했다.
당시 교도소에선 2차 대전 당시 쓰였던 비옷이 죄수들에게 제공됐고, 이 비옷은 이들에게 최고의 재료였다.
이들은 비옷 50여 벌을 훔쳐 구명조끼와 고무 뗏목을 만들었다. 비옷과 비옷 사이는 교도소 환풍구에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를 활용해 녹여서 이었다.
재료를 만드는 동안 밖으로 나갈 통로도 찾았다.
옥상 작업장 위의 환풍구가 유일한 길이었다.
환풍구를 뜯어냈고, 탈출의 그날까지 환풍구를 고정하기 위해 비누를 깎아서 볼트처럼 사용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환풍구에서부터 파이프를 타고 내려가 철조망을 넘어가는 것은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사라진 이들을 찾기 위해 FBI는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결국 이들을 찾지 못했다.
현재까지는 이들이 거친 파도와 낮은 수온으로 인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들이 사망했다는 증거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FBI는 사건을 1979년 미 연방보안국(USMS)에 넘겼고, USMS는 이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관련 친족이나
지인의 증언이 거듭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이 사건을 맡아 온 미 연방보안관 마이클 다이크는 LA타임스에 “두 달에 한번씩은
이 사건 관련 제보를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럴싸한 제보가 많았다.
무엇보다 앵글린 형제의 또 다른 형제나 누이로부터 나온 증언들이 미스터리를 더욱 키웠다.
이들이 탈옥한지 1년 6개월이 흐른 1963년 12월 앵글린 형제의 막내인 알프레드 앵글린이
형들로부터 가죽 파우치를 받았다고 증언했고,
그의 누이들은 어릴적 고향집에 아무런 카드도 붙여지지 않은 꽃이 매년 배달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75년 브라질 농가에서 앵글린 형제가 찍힌 사진이라며
한 사진이 공개된 이후 형제가 브라질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78년 앵글린 형제 어머니의 장례식엔 여장한 두 남성이 왔다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다이크는 LA타임스에 “탈옥 당시 노와 뗏목이 앨커트래즈에서 1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엔젤 섬에서 발견됐고, 당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는 증언도 있다”며 “그날 밤 차량 절도 신고도
세 건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미리 조류를 파악해서 2km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내륙이 아닌 엔젤섬으로 향하기로 정했다는
모리스의 계획이 실제 실행됐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실제 탈옥에 성공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상어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상어밥이 됐을지는
이들 세 사람밖에 모를 것이다.
다만 USMS가 이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는 시간도 모리스가 99세가 되는 내년이면 끝난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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